[삶의 뜨락에서] 아름다운 상상
매사추세츠 항구도시인 뉴 베드포드에 큰 고래박물관이 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읽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붐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소설에 나온, 선원들이 고래잡이배를 타고 출항하기 전 기도를 드린 선상 교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타운 관계자들은 난감했다. 사실 도시에는 선상 교회라는 것이 없었다. 타운 행정부는 배 모양을 한 교회를 하나 짓기로 했다. 몇 년 전 이곳을 방문, 박물관과 타운을 돌아본 후 이 선상 교회에 들러 머리 숙이고 기도했다. 150년 전 출항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선원처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줄리 앤드류스가 트랩 가족의 일곱 아이와 춤추고 노래 부른 현장을 찾아다녔다. 현지인들은 어리둥절했다. 이들은 영화가 이곳에서 찍힌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미국인들의 영화 이야기를 전해 듣고야 알고 영화 촬영 현장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요즘 잘츠부르크 여행은 주로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루마니아 북서부에 트랜스 실바니아라는 소읍을 수년 전 여행한 적이 있다. 이곳에 드라큘라 성이 있다. 아이리시 작가, 브램 스토커는 오스만 제국의 루마니아 학정을 풍자한 소설 ‘드라큘라’를 출간해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소설은 흡혈귀를 동원한 공포영화가 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막상 작가는 한 번도 현장을 찾은 적이 없이 오직 들은 이야기와 상상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루마니아는 독일과 인접해 있고 아일랜드와 멀지 않은데 어쩌면 현장 리서치를 하지 않고 ←소설을 썼단 말인가, 작가의 안일함을 나무라고 싶었으나 그의 풍부한 상상력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태국의 관광명소에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가 있다. 일대에 두 다리가 있는데 주민들은 미국 극장가를 휩쓴 영화가 여기를 배경으로 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영국 포로들이 일본의 강압으로 미얀마(버마)와 시암(태국)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에 동원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합군은 이 다리를 폭파해 일본군의 수송로를 차단했다. 영화는 1952년에 나온 피에르 불의 소설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역시 허구였다. 사람들은 꾸며낸 이야기를 진실로 믿고 현장을 찾아오고 태국은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라이트 형제. 오하이오 데이톤에서← 자전거상을 하고 있던 형제는 노스캐롤라이나 키티 호크 바닷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들은 여기서 큰 새들이 힘차게 비상하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새들은 저렇게 날 수 있는데 왜 사람은 비행물체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위대한 의문, 놀라운 상상이었다. 인공지능 시대, 척척박사 Chat GPT에 물어보면 몇 초 만에 대답해 준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상상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날카로운 관찰, 경계 없는 상상, 무한한 의문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이것은 위대한 발명, 발견을 낳을 수 있다. 상상하다 보면 꿈을 갖게 된다. 모든 예술의 원천은 상상력이다. 천둥·번개 같은 영감, 이 영감을 다듬어 작품화하면 뭔가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새해에는 큰 꿈을 꾸었으면 한다.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은 희망이다.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영화 이야기 영화 촬영 선상 교회